여름의 한가운데, 뜨거운 햇살 아래 잠시 그늘을 찾게 되는 시간입니다. 분주했던 오전이 지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지금, 우리 마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고(慈), 다른 이의 괴로움을 함께 아파하며 덜어주려는 마음(悲)이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어떻게 남을 돕는단 말인가?' 내 마음에도 시름이 가득하고 내 어깨도 무거운데, 다른 이를 향한 자비심을 내기란 참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 '자비의 실천'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목마른 이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길을 가다 목이 말라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가 왜 목이 마른지, 나에게 어떤 이득이 될지를 따지기보다 그저 가진 물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냅니다. 그 순수한 마음이 바로 자비의 시작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침묵, 작은 도움의 손길 모두가 다른 이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자비의 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물을 건네주려면,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내 물잔이 비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내 잔이 바닥을 보이고 갈라지고 있는데, 억지로 남에게 물을 따라주려 하면 나 자신이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이는 진정한 자비가 아니라 나를 소진시키는 행위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소중하듯 나 또한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듯 나 또한 고통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비의 시작점입니다.
스스로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스스로를 향해 따뜻한 격려를 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안의 마른 잔에 시원한 물을 채우는 '나를 향한 자비의 실천'입니다.
내 안의 자비의 샘이 마르지 않아야, 그 맑은 물을 다른 이들에게 얼마든지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한 따뜻함이 내면을 가득 채울 때, 그 온기는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주변을 덥히게 됩니다.
도반님들, 오늘 하루 다른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다정한 물 한 잔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하루 애썼다'고, '괜찮다'고 속삭여주며 나를 위한 휴식의 시간을 선물해보세요. 이렇게 나를 채우는 자비가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